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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사는 이야기

든사람,난사람,된사람

든사람,난사람,된사람

 

'든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이 많이 든 사람을 이른다. '난사람'이란 재주가 있어 출세하고 이름난 사람을 말한다. '된사람'은 인격이 훌륭하고 덕이 있어 됨됨이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판사에게 석궁을 쏜 김명호씨는 분명 든사람이다. 미국 유학까지 한 박사요, 전직 대학교수였다. 하지만 결코 된사람은 아니다. 일부에선 국민의 편치 않은 법감정을 대신 표출했다며 그의 행동을 내심 지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살인미수범'으로 전락시키며 일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을 보면 한마디로 '헛똑똑이'다.

며칠 전 일체 정치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한 고건씨는 근래 대한민국 사람치고 그만큼 관운 좋았던 이가 없다 싶을 만큼 난사람이다. 게다가 대학총장 자리에도 있었기에 든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된사람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갑작스러운 신변 정리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관직은 나아감과 물러섬이 분명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치는 더불어 하는 것이기에 혼자 마음을 접어버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정치란 모름지기 자기를 던지는 일이다. 지지율 오를 땐 앞장서 나섰다가 찬바람 불고 지지율 떨어지니 슬그머니 물러서 손을 털면 되는 일이 아니다. 뜻을 같이하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던 이들을 한 몸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마땅한 도리다. 그런 점에서 고건씨는 진퇴에 능한 관리는 될지언정 북풍한설을 뚫고 앞장서 나설 만큼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는 못 됨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결국 변변한 출사표 한 번 내보지 못하고 또 제대로 된 퇴거의 변조차 내놓지 못한 채, 한때 지지자였던 사람들의 항의 속에서 도망치듯 황망히 떠난 고건씨를 보노라면 그 역시 된사람과는 거리가 있는 듯싶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에서의 인기가 자신보다 높을 것이라며 방한을 요청했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든사람, 난사람보다 된사람의 이미지가 더 강하고 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그의 오래된 점퍼이야기며, 촌부가 감사한 마음으로 전한 사과상자를 받고서 우리 돈 3만6000여원의 그 사과값을 애써 치른 이야기를 전해 듣노라면 그의 됨됨이를 짐작할 만하다. 사과상자 하면 억대 돈이 든 뇌물상자를 떠올리는 우리의 우울했던 자화상과 너무나 대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자바오 같은 된사람이 이끄는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여섯 자녀 모두를 하버드대와 예일대에서 공부시키고 미국사회 주류에서 활동하도록 키워낸 전혜성씨. 그녀는 아이들에게 항상 덕승재(德勝才), 즉 "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Virtues over skills)"고 가르쳤다.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덕이 없다면 그 재주는 세상에서 옳게 쓰이지 못할 것이기에 그 가르침은 백번, 천번 옳았다.

앨 고어는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밴더빌트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된 든사람이다. 또 8년씩 하원과 상원의원을 거쳐 클린턴 행정부 시절 다시 8년간 부통령을 지낸 난사람이었다. 하지만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총투표 수에서는 부시보다 54만3000여 표 앞섰으나 선거인단 투.개표 과정에서 정말 억울하게 대통령 자리를 놓쳤다. 2004년 대선에도 나서지 않고 칩거하던 그는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하자 직접 비행기를 전세 내 이재민을 구하는 데 나섰다. 그리고 물에 잠긴 병원에서 애타게 구조만을 기다리던 280여 명의 환자를 구출해 냈다. 비록 대통령 자리엔 오르지 못했지만 앨 고어는 진짜 된사람이었다.

세상엔 든사람도 많고 난사람도 많다. 그러나 된사람은 드물다. 그 된사람이 아쉽고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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