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사는 이야기

숲의 默言

 

 

숲은 아무 말 않고 나뭇잎새를 보여주네

저 부신 햇살을 걸러 속창까지 씻은

푸르른 투명, 바람 한자락에도

온천지 반짝이며 일렁이는 잎새들 앞에서

내 생 맑게 걸러내고 씻어낼 것은 무엇인지

 

숲은 아무 말 않고 새소리를 들려주네

저것이 어치인가 찌르러기인가

저 소리 떨리는 공기의 둥그런 파문 속에

내 무명의 귀청을 열고 들어가

한 편의 그 무슨 득음을 이루었으면 하네

 

숲은 그러자 이윽고 꽃들을 흔들어 주네

어제는 산나리꽃 오늘은 달맞이꽃

혹은 깊은 골의 백도라지조차 흔드니

내 생 또 얼마나 순해져야 저 맑은 꽃 하나

우주 속 깊이 밀어올릴 수 있을 것인지

 

그때 문득 계곡의 물소리를 듣네

때마침 오솔길의 다람쥐 준빛에 취해

명경처럼 환해진 마음일 때에야 울려오는

저 낭랑한, 저 청청한 세계의 소리

저 소리 되레 고요지경을 여는 소리여

 

그러면 숲의 침묵이 이룬 저 봉우리 하나

이제 말쑥하에 닦을 수 있을 것 같네

설령 내 석삼년 벙어리의 외로움일지라도

시방 숲 앞에선 아무것도 아닐진대

숲은 다만 시원의 솔바람 소리를 들려주네.

 

 

---------------------------------------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다.

고재종님의....

 

 

모든것은 그렇게 의미가 있으리라...

'내가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을 주는세상으로...  (0) 2006.05.10
베트남에서 오신분 환영합니다.  (0) 2006.04.28
젊음이 좋다.  (0) 2006.02.26
오랫만에 합기도를 ...  (0) 2006.02.26
이택금씨의 책을 읽고...  (0) 200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