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체온 30도로 떨어지면 숨지는 이유는 '물'
(국제 심포지엄 계기로 본 물의 과학)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11, 12일 이틀간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물의 과학과
기술'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육각수 이론을 제창한 고 전무식 박사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물의 신비를
알아본다. 대관령에는 모기가 거의 없다. 보통 곤충은 기온이 섭씨 15도 밑으로 떨어지면 살아남기 힘든데 고지대인 대관령은 평균적으로 섭씨 16도 이상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경우 체온 30도가 생명 유지의 데드라인이다. 평상시 36~37도를 유지하고 있는 체온이 30도 밑으로 떨어지면 주변 기온과 관계없이 얼어 죽게 된다. 강릉대 화학과 윤병집 교수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섭씨 0도, 15도, 30도같이 15도 간격마다 '생명의 신비'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각각 섭씨 15도 간격의 온도에 따라 생명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양자역학적으로 물 분자는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 안에서 'S'자의 파장을 그리며 움직인다. 그 파장의 범위는 0.2Å(100억분의 1m)인데 이 파장은 기온이 섭씨 0도일 때 처음 시작점과 끝나는 점의 위치가 같아 가장 안정된 상태가 된다(그래픽a). 그런데 기온이 올라갈수록 물 분자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커진다. 그러면 시작점과 끝점이 각자 달라져 물 분자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그래픽b). 이 불안정한 상태는 활동공간이 계속 커져 다시 파장의 시작점과 끝점 위치가 같아지는 순간까지 이어지는데 그때가 바로 15도가 되는 순간이다(그래픽c). 따라서 물 분자는 '섭씨 0도, 15도, 30도, 45도…' 같이 15도 간격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를 맞이한다. 물 분자가 안정된다는 것은 생명체엔 치명적인 일이다. 체내 수분의 분자가 안정돼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다른 신진대사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곤충.인간을 포함, 대부분의 생명체가 섭씨 15도 간격으로 신체의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며 "이는 몸을 구성하는 물 분자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이 성질을 이용해 과일.채소를 효과적으로 보관할 수도 있다. 음식물이 부패하는 것 역시 세포 속에서 여러 활동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온도를 잘 이용해 물 분자를 안정시킴으로써 이런 활동 자체를 봉쇄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실제로 실험 결과 딸기.사과는 섭씨 0도, 고구마.바나나는 15도 근처에서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섭씨 20도에서 어는 물도 있다. 거기서 어는 얼음은 '뜨거운 얼음'인 것이다. 서울대 화학과 강헌 교수팀은 최근 물에 전극을 넣고 100만V의 전압을 걸어 표면에서 아주 얇은 얼음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고압에 의해 물 분자가 한 방향으로 정렬하면서 얼음이 된 것이다. 통상 얼음이 어는 점은 섭씨 0도지만 2만5000바(bar, 지구의 대기압은 1바)의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는 그 온도가 섭씨 100도로 올라간다. 보통 물이 펄펄 끓을 온도에서 물이 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만들기는 어려운 이론상의 얼음일 뿐이다. 강 교수팀이 만든 고온의 얼음도 그 이전까지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다. 강 교수팀은 금으로 된 전극 사이에서 물의 전자가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연구하다 이런 현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의 연구성과가 실용화된다면 앞으로 얼음은 차다는 고정관념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물은 섭씨 0~100도의 대기압에서 아직까지 지구상에만 존재하는 액체 상태다. 너무나 흔한 물은 그러나 우주에서는 아직 볼 수 없다. 단지 얼음 알갱이나 기체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섭씨 영하 100도 이하의 얼음 알갱이 표면에서도 화학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극저온에서의 화학반응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그런 사실 또한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극저온의 얼음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진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