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산다.
‘스트라이크(strike)를 잘 던지는 투수보다 볼(ball)을 잘 던지는 투수가 특급 투수다’.
아마추어 야구에서 볼은 스트라이크를 던지려다 빠진 공이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의 볼은 타자를 유인하는 ‘유인구’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투수 그레그 매덕스(42)는 ‘컨트롤의 마술사’로 불린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 반 개 차이로 걸치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유인구도 공 반 개 차이로 빠지는 볼을 던진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타자 입장에서는 헷갈릴 수밖에 없다.
시속 160km의 강속구도 한가운데로 들어오면 얻어맞는다. 매덕스는 시속 130km대의 공을 던지면서도 ‘반 개 차이로 버리는 공’을 무기로 1988년부터 2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고, 92년부터 4년 연속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내셔널리그)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41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14승을 거두며 22년간 총 347승을 올렸다.
책을 ‘잘 버리는’ 교수 부부를 알고 있다. 부부가 교수니 책이 순식간에 쌓여 3개월마다 책 정리를 한다. 이들의 원칙은 ‘3개월 동안 한 번도 보지 않은 책은 영원히 보지 않는다’다. 아무리 비싸고 아까운 책이라도 3개월 동안 보지 않았다면 미련 없이 버린다. 보지 않는 책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 정작 필요한 책들이 천덕꾸러기가 되기 때문이다.
심호흡을 할 때 대부분은 한꺼번에 많이 숨을 들이마시려 한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를 많이 공급하려면 오히려 숨을 끝까지 내뱉는 것이 중요하다. ‘후우-’ 하고 숨을 끝까지 내쉬면 저절로 ‘하악-’ 하면서 새로운 공기가 들어와 폐의 빈 공간을 채우게 된다. 먼저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다. ‘버림의 미학’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하다. 과거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에도 서로 인수위에 들어가려고 기 싸움이 치열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기 위한 암투도 대단하다. 대통령 선거전 때 직접 이명박 캠프에서 뛰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간접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이명박과 특수관계’임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지금 ‘한 자리’를 고대하고 있다. 이 숫자가 얼마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MB 캠프’의 언론특보만 40명이 넘었다니 미뤄 짐작할 수는 있다.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이 직접 챙겨줄 수 있는 자리가 3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미리 결론을 얘기한다면 권력의 주위에 맴돌면서 한몫 챙기려는 ‘정치꾼’ (이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꾼’이라고 불러야 한다)들에게 ‘자리’를 줘선 안 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한 자리 챙긴 사람 중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십중팔구는 그 자리를 발판으로 해서 더 큰 자리, 더 좋은 자리를 노린다. 그러려면 그 조직에 충성하고, 그 조직을 잘 이끌려는 생각보다 자기만 내세우고, 자기의 공적만 쌓으려 한다. 그 조직에 대해 잘 모르는 문외한이 생각마저 콩밭에 가 있으니 그 조직이 잘 굴러갈 리 없다. 조직원들이라고 그걸 모를까. 더 좋은 자리만 생기면 언제든 떠날 사람인데 대충 기분만 맞춰주면 그만이다. 무슨 충성심이 있고, 열의가 있겠는가.
대통령 입장에서 신세진 사람에게 ‘작은 자리’ 하나 마련해 주는 게 얼핏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조직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그냥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로 때우든지, 정말 신세를 갚아야 할 사람이라면 차라리 선물을 하든가 돈을 주는 게 낫다.
만일 자리를 주지 않는다면 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배은망덕’이니 ‘신의가 없는 사람’이니 욕을 할 것이다. 동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3만 명에게 욕을 먹더라도 4800만 명에게 칭찬을 듣는 게 분명 ‘남는 장사’다.
인재를 잘 쓰는 게 중요하지만, 잘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버려야 나라가 산다.
(중앙일보 2008. 1. 26일자 손장환 기획취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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