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성

고개를 가로저어라

가로저을줄 알아야...

 

 

'오잉크(oink)'는 돼지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영어 의성어다. 우리 돼지는 "꿀꿀"대지만 서양 돼지는 "오잉크 오잉크"하며 먹이를 찾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오잉크란 말이 외국계 기업 사이에서 화제란다. 뜬금없는 돼지 울음이 아니라 'only in Korea(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의 약자다. 돼지가 함의하듯 다분히 경멸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일'이라는 뜻이다.

불쾌하지만 부정하기도 어렵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 나라에서는 이해 못 할 일들이 무덕지게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급할 때 싸게 팔고는 살 만해지니까 아깝다고 투정하는 듯한 론스타 사건도 그렇고, 세계 12위 경제대국 남한에서 세계가 비웃는 북한의 선군정치를 선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렇다. 자식을 전경으로 보낸 어머니가 분규 없는 노조에 감사 편지를 보내야 하는 상황도, 멀지도 않은 과거사를 파헤친다고 10여 개 위원회를 만들어 수천억원을 뿌리는 것도 참 한국스럽다.

모두 한국 사회의 높은 엔트로피 탓이랄 수 있는데 한때는 그것이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정해놓고 앞만 보고 달렸다. 장애물이 있으면 불도저로 밀고 온갖 허물도 아스팔트로 덮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반대하는 목소리, 우려하는 목소리는 중장비 소음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종종걸음으로 온 대신 길에 흘리고 떨어뜨린 것도 많았다. 앞선 이들을 제법 따라잡고 한숨 돌리고 나니 잃어버린 것들이 생각나고 그걸 되찾자는 목소리들이 "오잉크 오잉크" 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스스로 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그동안 우리가 목적 달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잘못을 관용해 왔는지. 그릇된 줄 알면서 못 본 척한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렇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뒤만 보는 것은 바보 짓이다. 화장실 갈 때와 올 때는 달라야 한다. 같은 건 변비 환자뿐이다.

이제는 짚고 넘어갈 때다. 그릇된 것을 보면 그냥 넘기지 말자. 미국 작가이자 언론인인 스테트슨 케네디는 1940년대에 '찌푸리기 힘(Frown Power)'이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어디서든 인종차별적 행동이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얼굴을 찌푸림으로써 불쾌함을 표현하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공공연한 인종차별이 그나마 줄어든 데는 찌푸리기 힘 운동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얼굴을 찌푸리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으면 어떨까.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한 헤드폰 회사에서 대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테스트했다. 첫 번째는 가만히 앉아서, 두 번째는 머리를 상하로 끄덕이며, 세 번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음악을 들었다. 음악 말미에 등록금 인상 뉴스를 전했다. 결과는 대단히 흥미롭다. 첫 번째 그룹은 등록금 인상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음악을 감상했다. 두 번째는 인상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세 번째 그룹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등록금이 오히려 인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말콤 글래드웰) 그저 고개만 저었을 뿐인데 강력한 반대 의사가 실현된 것이다.

잘못을 보면 고개를 젓자. 고개를 가로저음으로써 옳지 않은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거창할 것도 없다. 일상에서 출발하면 된다. 거리에서 불법 유턴하는 차량을 볼 때, 누군가 새치기를 할 때, 공중화장실의 수돗물이 줄줄 샐 때, 약속한 금액에 웃돈을 요구할 때, 이럴 때 고개를 젓자. 지하철 무임승차 단속 강화가 뉴욕시 전체의 범죄율을 급감시키는 초석이 됐다. 그것이 '깨진 유리창 법칙'이다. 거부하는 작은 몸짓 하나를 아꼈을 때 사회는 부조리와 모순으로 살찐 괴물이 된다. 그 괴물은 쉴 새 없이 "오잉크 오잉크" 운다.

'--------- 이 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남자들이 연상녀를 좋아하는 이유?  (0) 2006.10.07
가슴에 소중함 하나 묻어두고  (0) 2006.10.07
고도를 기다리며  (0) 2006.04.14
눈물  (0) 2006.04.11
백수 - 현재를 담보하지 말자  (0) 200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