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로 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89)가 이 세상에 온 지 꼭 100년이 됐다. 베케트는 53년 프랑스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린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6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극은 줄거리도, 사건도 없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나무 한 그루 달랑 있는 황량한 무대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사람이 끝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 이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올지, 온다면 언제 올지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이들은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재미난 것은 57년 미국의 샌퀜틴 교도소가 이 난해한 작품을 재소자 문화행사로 무대에 올렸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에 여자가 없어 남성 수감자들이 성적으로 흥분할 가능성이 작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 도중 재소자들은 "고도는
교도소 바깥세상이다" "자유가 고도다"라고 고함치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50년대 프랑스 식민 통치하의 알제리인들은 조국을 되찾는 것을,
60년대 폴란드인들은 소련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고도라고 여겼다. 군사정권하의 80년대 한국에선 고도가 민주화의 꿈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이렇듯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열린 연극이다. 그래서
모호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전히 공감을 얻고 있다.
극 중에서 블라디미르는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는다"고 외친다. 이 말은 부조리한 세계를 표현한 명대사로 꼽힌다.
이를 들으니 우리 현실이 떠오른다. 28년 전 납북된 아들이 같은 처지의 일본 여성과 나중에 결혼, 딸을 뒀다는 사실을 11일
일본 정부의 발표로 알게 된 최계월 할머니의 눈물 말이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은데 자식을 한 번만 보게 해 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정부는 납북을
확인한 지 10년 가까이 되도록 귀를 막아버린 이 기막힌 상황을 부조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할머니에겐 도저히 이해
못 할 이 남북 관계 부조리극이 끝나는 게 고도일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78년 납북됐다 86년 탈출하며 한반도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체험한 신상옥 감독이 바로 그날 세상을 떠났다. 부조리 없는 세상으로 가서 편히 쉬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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