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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랑

서경덕

 

 

서경덕은 조선 중종 때의 유명한 도학자이다.
그는 18세 때에 대학을 배우다가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니 과거 시험에는 뜻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명령으로 사마시에 응시하여
합격했을 뿐 벼슬살이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오로지 도학에만 전념하였다.

집은 극히 가난하여 며칠 동안 굶주려도
태연자약하였으며, 제자들의 학문이
진취된 것을 볼 때에는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평생을 산림 속에 은거하여 산 것을 볼 때에는
세상에 대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의 잘못을 들을 때에는
개탄함을 금하지 못해 임금께
상소를 올려 잘못된 정치를 비판했다고 한다.

이 서경덕이 바로 송도 부근의
성거산에 은둔하고 있을 때였다.
자연히 그의 인물됨이 인근에 자자하게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을 황진이도 들은 모양이었다.
벽계수와 지족을 무너뜨린 기세를 몰아 황진이는
서경덕에게도 도전을 한 모양이었다.

지족에게 썼던 수법을 그대로 서경덕에게 옮겼다.
하얀 속치마 저고리, 그 위에 흘러내린 비.
비에 젖은 하얀 비단 속옷이 알몸에 밀착되어
가뜩이나 요염한 기녀의 몸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차림으로 계속 비를 맞으며
서경덕이 은거하고 있던 초당으로 들어갔다.
물론 서경덕 혼자 있는 집이었다.

그러나 서경덕은 지족과 달랐던 모양이었다.
조용히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은 오히려
황진이를 반갑게 맞이했고
비에 젖은 몸을 말려야 한다며

아예 황진이의 옷을 홀딱 벗긴 모양이었다.
옷을 벗기고는 직접 물기를 닦아주는
서경덕의 자세에 오히려  
황진이가 부끄 러울 판이었다.

그래도 황진이는
"저도 사내인 것을……"
하며 은근히 오기를 가졌던 모양이었다.
황진이의 몸에서 물기를 다 닦아낸
서경덕은 마른 이부자리를 펴 황진이를
눕히고는 몸을말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꼿꼿한 자세로 글읽기를 계속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이윽고 밤이 깊었다.
황진이가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삼경쯤 되자 이윽고 서경덕이 황진이 옆에 누웠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이내 가볍게
코까지 골며 편안하게 꿈나라로 가버리는 서경덕
아침에 황진이가 눈을 떴을 때
서경덕은 이미 일어나 밥까지 차린 모양이었다

대충 말린 옷을 입고는 부끄러워서라도
황진이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황진이는 성거산을 다시 찾았다.
물론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음식을 장만하여 서경덕을 찾아갔다.

역시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이
이번에도 반갑게 맞았고, 방 안에 들어선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큰절을 올리며
제자로 삼아달라는 뜻을 밝혔다.
빙그레 웃는 서경덕.......

 

야사(野史)에 의하면 그가 지은 초막(草幕)에서 그에게 글을 배우러 다니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다음 시조 한 수를 남겼다고 전해지지요.

 

  마음이 어린 후(後)ㅣ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혀 긘가 하노라.
<출전 : 진본 청구영언>

  <현대어>

  마음이 어리석은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구름이 겹겹으로 쌓인 깊고 높은 산(내가 살고 있는 산중 초막에)에 어느 님이 올까마는
  (그래도) 지는 잎 부는 바람소리에 행여 그이인가 하노라.

 

 

재미있는 것은, 황진이가 죽은 후에 조선 시대 최대의 풍류객(風流客) 남아(男兒)로 유명한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평안도사(平安都事)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송도(松都) 개성(開城)에 들러 황진이 무덤을 찾아가 그녀의 묘(墓)에 술을 뿌리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고 애달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난이
  잔(盞) 자바 권(勸)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출전 : 진본 청구영언>

  <현대어>

  푸른 풀만이 우거진 골짜기 무덤에 자고 있느냐, 누워 있느냐?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느냐?
  술 잔(盞) 잡아 권할 이(사람)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왕명(王命)을 받드는 관리(官吏)가 죽은 기생(妓生)의 무덤을 찾아가 그 앞에서 울면서 이 시조(時調)를 지어 불렀다하여, 양반(兩班)의 체통을 떨어뜨렸다는 조정(朝廷)의 탄핵(彈劾)을 받아 벼슬에서 파직(罷職)을 당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가위(可謂) 황진이가 어느 정도의 명성(名聲)을 지닌 기생이었는가를 알 만한 일화(逸話)이지요.

 


  그것은 그렇다 치고, 황진이만월대(滿月臺)로 종친(宗親) 선비 벽계수(碧溪守)를 유혹하여 그 앞에서 명월(明月)을 배경으로 읊었다는 다음의 시조(時調)는 그녀가 이성(異性)을 향해 읊은 첫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조는 애틋하다기보다는 유혹적인 내용의 작품입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ㅣ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간들 엇더리.
<출전 : 진본 청구영언>

  <현대어>

  푸른 산 속 푸른 골짜기를 흐르는 물이여!  빨리(쉬) 흘러가는 것을 자랑하지 마라
  한 번 푸른 바다에 도달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빈 산에 가득히 비치니 쉬어간들 어떠랴.  


  다음의 황진이 시조(時調)들은 '임'을 향한 애틋한 여인의 정한(情恨)을 읊은 시가(詩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업내
  추풍(秋風)에 지난 닙소릐야 낸들 어이하리오.

  <현대어>

  내 언제 신의 없어 임을 속였기에
  달마저 기운 한밤중에 온 뜻이 전혀 없네
  가을 바람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찌하리오.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현대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처럼 향긋하고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뭉쳐 넣어 두었다가
  정든 님 오신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놓으리라.
 

 

  산(山)은 녯산(山)이로되 물은 녯물 안이로다
  주야(晝夜)에 흘은이 넷물이 이실쏜야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안이 오노매라

  <현대어>

  산(山)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밤낮으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뛰어난 인물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구나.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야
  보내고 그리난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현대어>

  아, 내가 하는 일이여! 그리워 할 줄을 몰랐더냐?
  있으라 했으면 갔을까만 제가 구태여
  보내고 그리워하는 심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난 님의 정(情)이
  녹수(綠水) 흘너간들 청산(靑山)이야 변(變)할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니져 우러예어 가난고

  <현대어>

  (변함없이) 푸른 산은 나의 뜻이요, (변함없이) 푸른 물은 임의 뜻이라
  푸른 물이 흘러간들 푸른 산이 변할소냐?
  (하지만 흘러가는)푸른 물도 청산(靑山)을 못 잊어 울며 흘러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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