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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디자인>

생얼건물 - 아모레퍼시픽 사옥

 

 화장 안 한 미인같은 ‘생얼 건물’

진하고 뚜렷한 화장보다는 맨 얼굴처럼 티 안 나는 화장이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2월 대전 서구 둔산동에 세운 아모레퍼시픽 대전사옥은 화장을 안 한 듯한 얼굴처럼 깔끔한 외관을 가졌다.

설계자인 김종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9)는 최종 계획안이 확정될 때까지 티타늄과 석회암 등 두 가지 외장 마감재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지하 4층, 지상 13층 건물의 하단 7개 층을 감싸는 재료가 이 건물의 인상을 결정하는 최소한의 화장이 되기 때문이었다.

은색 티타늄과 연노란색 석회암은 모두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재료지만 티타늄이 2배 가까이 비싸다. 김 교수는 결정을 망설이는 건축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46)에게 ‘세월과 함께 곱게 늙는 얼굴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티타늄과 석회암 모두 느낌이 맑아요. 어느 쪽이 더 좋은 재료라고 딱 잘라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 외벽은 유리로 감싸는 부분과 바깥 공기에 직접 노출되는 부분이 구별된다는 문제가 있어요. 외기에 노출된 석회암은 서서히 노란빛을 잃어가게 되죠. 유리로 덮인 부분과 갈수록 색깔이 달라져서 얼룩덜룩하게 보일 겁니다.”

 

오래 변하지 않는 모습의 건물을 원했던 서 사장은 이 말을 듣고 티타늄 마감에 동의했다. 서향(西) 건물 전면을 감싼 티타늄 외벽과 수직 차양은 낮에는 은은한 푸른빛을 띠다 노을을 받을 무렵 붉은빛으로 달아오른다.

이희복 홍보팀장(46)은 “외관에서 회사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다른 사옥들보다 은은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며 “회의실이나 통로 등 내부 공간에도 경직된 느낌이 없어서 편안하다”고 말했다.

치렁치렁 화려한 장식 요소를 없앤 내부 공간도 이런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공조나 전기 설비를 내벽과 천장 안쪽으로 감추고 깔끔하게 다듬어낸 계단실과 로비는 공간에 쓰인 ‘점, 선, 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설비에 필요한 공간을 한데 모아 기둥 대신에 천장을 지지하게 해 내부를 정리한 것이다.

이 건물은 사무실과 상가 건물이 가득 들어선 도심 거리의 한 블록 모퉁이에 서 있다. 유리와 티타늄이 엇갈린 외벽은 모퉁이의 시선을 답답하게 막지 않았다. 막고 채우는 건물보다 비우고 틔우는 건물이 도시의 표정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