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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디자인>

무라사키강 브랜드화 - 물과 도시 공존

[물과 도시 공존의현장을 가다]<3>기타큐슈 무라사키강

 

 

폐수 흐르던 ‘검은 강’이 낚시-수영 즐기는 ‘보랏빛 강’으로

《지난달 26일 일본 규슈()의 최북단 기타큐슈 시 중심부를 흐르는 ‘무라사키() 강’(길이 19.8km) 연안. 바람이 찼지만 강변에는 낙조를 바라보는 커플이 앉아 있었다. 강물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곳에서 찰랑거린다. 물빛은 바닷물과 섞여 푸른색. 건너편 강변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정겹다. 약 90m 강폭 양안에는 강을 배경으로 한 가게나 건축물이 즐비하다. 서안(西)에는 시청사, 시민공원, 모래톱 광장, 고쿠라 성(), 상업문화시설인 ‘리버워크 기타큐슈’가 보인다. 동안()에는 이벤트용 수변무대, 교육시설인 물 환경관이 있고 테라스 형식의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강가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한 회사원은 “날씨가 좋으면 낚시꾼도 등장한다”고 말했다. 망둥어 감성돔 등이 잘 잡힌다고 한다.》


도시의 양안은 각기 ‘불의 다리’ ‘나무의 다리’ 등 자연의 이름을 붙인 10개의 다리가 이어준다. 차도만큼 넓은 가치야마 다리의 인도는 이벤트 때면 무대가 되기도, 노상카페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곳은 고도경제성장기인 1960년대만 해도 공장폐수나 생활폐수로 오염돼 ‘무라사키 강’(‘보랏빛 강’이란 뜻)이란 제 이름 대신 ‘검은 강’이라 불렸다. 도시와 강은 따로 놀았고 건물들은 구정물이 흐르는 강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정비작업으로 도시는 숨을 쉬게 됐다. 건물들은 서서히 강을 향해 세워졌고 ‘모든 것은 강으로 통하는’ 지금의 워터프런트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정비 과정에서 만들었다는 물 환경관에 들어가 봤다. 한구석에는 대형 스크린 같은 아크릴 창이 나 있다. 강물 속을 관찰하는 창이다. 여기서 만난 8세, 4세 형제는 “물이 맑은 날은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가 섞여 노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무라사키 강은 하구 약 2km 구간에서 담수와 해수가 섞여 운이 좋으면 담수와 바닷물이 섞이는 경계면을 볼 수도 있다.

‘창문을 통해 강물 속을 들여다본다’는 아이디어는 20여 년 전 한 중학생에게서 나왔다. 1988년 기타큐슈 시가 무라사키 강을 어떻게 개발하면 좋을지 시민들에게서 아이디어를 모집했는데 이 아이디어가 나왔다. 가치야마 공원 변의 모래톱 광장 역시 당시 초등학생이 낸 아이디어다.

‘강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작업의 출발점은 본래 수해대책이었다. 무라사키 강 하류 2km 구간은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1953년 집중호우 때는 당시 강 하류 일대의 80%가 침수 피해를 봤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1987년 당시 건설성이 ‘마이타운 마이리버 정비사업’을 창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타큐슈 시는 가장 먼저 손을 들었고 이듬해 ‘지정 하천 제1호’로 선정됐다. 시는 이를 기회로 삼아 인구 100만의 도시 기타큐슈의 중심이 될 도심을 만들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다. 이후 하구 2km 구간에 대한 대대적인 유역 정비사업과 도시 재개발사업이 종합적으로 진행됐다. 시는 우선 시청 내에 ‘무라사키 강 주변 개발실’이라는 수평 조직을 만들어 관련 부서의 담당자들을 불러 모았다. 강변 정비가 종합적 사업인 만큼 칸막이 행정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케다 가쓰히코() 도심부도심 개발실 계장은 “부서마다 논리가 제각각이니 처음에는 만나서 주로 싸우는 게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 각 부서의 논리보다 강과 주변을 어떻게 소생시킬 것이냐는 목표를 중심으로 실무자들은 서서히 뭉쳐갔다. 여기에는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기타큐슈 시장으로 재임하며 이 사업에 힘을 쏟은 스에요시 고이치() 전 시장의 독려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우선 하류 부분에서 강폭이 좁아져 상습 침수를 일으키던 지역의 강폭을 59m에서 89m로 넓혀 유수 능력을 두 배로 늘렸다. 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백화점이나 호텔 등 상업 도심으로, 서쪽은 이 지역 출신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이나 고쿠라 성 등 문화 도심으로 구상했다. 교통체계도 확 바꿔 서쪽 연안은 아예 도로를 없애고 공원을 조성했다.

당초부터 모든 사업이 관민() 협력하에 이뤄졌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정비 구상 단계인 1987년부터 건축가 대학교수 향토사가 언론인 공무원들이 각종 위원회를 구성해 아이디어를 냈다. 이들의 노력은 국내외에서 평가받고 있다. 2007년 5월 국토교통상으로부터 ‘아름다운 거리 대상’을, 2006년과 2007년에는 미국의 NPO가 우수한 워터프런트 개발사업에 주는 상을 2년 연속 받았다.

고쿠라 성을 찾는 관광객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90년 22만 명 수준이던 것이 2005년에는 47만 명으로 늘었다. 2006년에 시가 1990년과 비교해 실시한 시민모니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강의 수질이 깨끗해졌다’가 83%, ‘하류의 경관이 좋아졌다’가 85%, ‘마을에 활기가 생겼다’가 74%에 이르는 등 긍정적인 답변 일색이다.

일본 내 하천 복원의 권위자인 시마타니 유키히로() 규슈대 교수는 “다시 강의 매력을 되찾아 인간의 삶도 풍성하게 하자는 것이 현대 도심하천 복원의 기본정신”이라고 말한다.

 

은 땅 내놓고 은 규제 풀고… 강 살리기 ‘윈윈’


무라사키 강 재생작업은 민간의 참여 없이는 이뤄지기 어려웠다. 비영리법인 ‘무라사키 강 마이타운회’는 지역 상점가를 중심으로 2000년 설립된 단체다. 지난달 27일 찾은 사무실은 마침 다음 날로 닥친 이벤트 준비로 다들 정신이 없었다.

“수변무대에서 콘서트를 열고 대여용 보트도 운용할 계획입니다. 강변 공원에서는 각종 바자가 열리지요.” 니시무라 히로유키(西) 간사는 “강과 도시는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공유자산”이라며 “강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시민 자신이 해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단체에는 현재 개인 30여 명, 기업법인 10여 개사 회원이 가입해 있다.

실제로 20여 년에 걸친 무라사키 강 재생작업에는 민간 자본이 대거 투여됐다. 그간 들어간 사업비 중 국가 예산과 현의 보조금은 약 950억 엔이었던 데 비해 민간의 자본은 2650억 엔에 이른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투자가 기대됐던 백화점이 철수를 하는가 하면 정비사업에 토지를 깎아내야 했던 업주들의 반발도 심했다. “정말 뭐가 되긴 되는 거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성과물이 하나 둘씩 나타나면서 이들의 인식은 달라졌다. 첫 주자는 1997년 시 청사를 마주보고 완공된 크라운 팰리스 고쿠라 호텔이었다. 대지의 3분의 1을 강변 조성사업에 내놓아야 했던 건물주에게 기타큐슈 시 측은 워터프런트에 포함된 용지를 호텔의 앞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용적률을 높여줬다. 지금도 호텔 건물은 민간소유지만 앞마당은 시유지다. 행정도 양보하고 민간도 양보함으로써 ‘윈윈’하는 방향을 찾아나간 것.

“20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그 더럽고 냄새나던 강에서 이제는 낚시를 하는 사람도, 여름이면 수영을 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니시무라 간사)

무라사키 강 마이타운회는 각종 이벤트 개최 외에도 ‘무라사키 강 브랜드화’를 위한 워크숍을 여는 등 상권 활성화를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들의 투자는 당장 수입으로 연결되고 있을까. 니시무라 간사의 느긋한 대답이 돌아온다. “도시가 아름다워지면 사람들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간접효과가 클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