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가 된 조각가의 연서 실연 때문에 자살 택했나
한국 현대미술사에 신화로 자리 잡은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73)는 자살로 삶을 마감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자살한
원인은 그동안 의문에 싸여 왔다. 33년 만에 새로운 실마리가 드러났다.
권진규의 유서를 받은 마음속의 연인이 33년 만에 그
편지와 헌정받은 작품을 옥션에 내놓았다. 편지와 유작은 22일 열리는 K옥션(대표 김순응)의 3월 미술품 경매에 출품될 예정이다. 출품자는
권진규가 사랑했던 제자 김정제씨. 당시 김씨는 권진규가 출강하기 시작한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응용미술학과 학생이었다. 김씨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정인이 있었으나 제자를 향한 권진규의 사랑의 불꽃은 거침이 없었다.
김씨가 공개한 편지 다섯 통은 나이와 현실을 뛰어넘은
권진규의 애정을 보여준다. 죽기 여섯 달 전에 부친 연서는 이미 자살을 예고하고 있다.
"정제에게. 최후의 천사였던 님 정제.
인생은 무(無).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들으면서 작별합니다. 1972년 11월." 또 한 통의 편지에는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져
있어 '인생은 무'라는 구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마지막 편지는 자살 직전에 보낸 것으로 "정제야 정제 정제 정제…" 식으로 김씨의
이름을 열두 번 쓴 뒤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이다. 거사 오후 6시"라고 적었다. 권진규는 편지 그대로 73년 5월 4일 오후 6시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편지는 사랑하는 제자를 그리는 마음과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이젠 기다리다 못해
지쳐버린 것 같다. 떠난 지 6일 만에 날아 들어온 편지. 앗, 정제 것이 틀림없겠지, 주워 보니 그렇다. 나는 뛰었다. (…) 고독하리라.
나의 고독은 아직 4, 5일 남아 있다. 8월 1일 귀경(歸京)인가 아닌가." 김씨가 여름방학 봉사활동으로 경남 거제군 장승포의 엠마누엘 보육원
캠프에 가 있을 때 보낸 편지 일부다.
그동안 미술사가들이 대체로 동의한 권진규의 자살 원인은 '우리 조각계의 천박함에 절망한
작가의 좌절'이었다. 외국 작품을 모방하는 데 몰두하거나 사실성을 상실한 당시 국내 조각계의 풍토에 좌절했다는 추론이다. 편지와 함께 경매에
부쳐질 작품은 모두 권진규가 김씨에게 사랑의 선물로 준 것들이다. '자소상' '여인상' '엎드린 여인' 등 5점으로 묶어 추정가 2억~3억원에
나왔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생전의 권진규가 서울 동선동 작업실에서 마음의 연인이었던 제자 김정제씨에게 줄 '자소상'을 완성한 뒤 자신의 얼굴과 비교하고 있다. 이 '자소상'이 22일 열릴 K옥션 경매에 그의 편지 다섯 통과 함께 나온다. 자소상은 자신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다.)
--- 조각가 권진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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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계가 손꼽는 조각가다. 일본 도쿄예술원과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조소를 공부한 뒤 귀국해 테라코타(구운 점토)와 건칠(乾漆) 등 전통에 바탕을 둔 조각 세계를 일궜다.
기마민족의 맥을
잇는 말 조각, 불교의 정신을 형상화한 절제된 인물상 등 한국적 사실주의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미술사에 자리매김됐다. 지난 1월 K옥션에 나온
그의 테라코타 두상(頭像) '지원'은 1억6000만원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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