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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혜린...불꽃 같은 삶

전혜린(田惠麟,1934.1.1 - 1965.1.11.)

한국의 수필가, 번역문학가.

1.영혼의 집시 일생

그녀는 1934년 1월 1일 평남 순천에서 전봉덕(변호사) 의 장녀로 출생하였다.

1952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법대에 입학하여 동대학 재학중 독일에 유학하여 뭔헨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에칼트 교수 조교로 있다가 귀국하여 서울법대, 이화여대 강사와 성대 교수를 역임하였고, 펜클럽한국본부 회원이기도 했다.

그녀는 철새처럼 한 계절의 꿈을 앓다가 31세의 젊음을 포기했다. 그녀는 영원한 지적(知的) 방랑아인양 관념의 고뇌를 겪다가 생의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한가운데로 항해해 가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천재성과 미학 그리고 스스로의 모랄을 이룩하고자 벽돌공처럼 성을 쌓아 올리다가 어느날 문득 자기도 한낱 평범한 여인으로 변신해 감을 느끼자 죽음으로 천재성을 반증(反證) 했다.

날개 옷을 도난 당한 선녀처럼 천국에의 향수(鄕愁) 에만 젖어 있다가 그 옷을 찾지도 못한 채 육신은 대지에다 묻고 영혼만이 승천해 가버린 여인이 그녀였다.

1934년에 태어나 1965년에 죽기까지 그녀는 법학, 독문학, 연극, 불문학, 수필, 번역 등을 편력했다. 마치《생의 한가운데》의 여주인공 니나처럼 모든 문제를 생 그 자체에다 밀착시켜 환희와 고뇌에 도취하는 것이 그녀의 생활 방식이었다.

번역이 아닌 그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번역작품의 진한 포도주 같은 문체에 취한 술꾼(독자) 이 양조장의 창고나 부엌을 넘겨다보는 것처럼 흥미있고 약간의 탐정적인 요소까지 겸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그렇건만 정작 그녀가 남긴 수필들을 다 읽고나면 독자들은 무언가 자꾸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이 허전함 때문에 그녀의 글은 젊은 세대에게 아필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녀의 수필은 아래와 같은 다섯가지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첫째 가장 빈번히 나오는 이야기요, 그녀 자신의 영혼의 고향이기도 한 유럽적인 것(특히 뮌헨)에 대한 광적(狂的) 인 애착과 향수를 들 수 있다. 《다시 나의 전설 슈바빙》을 비롯하여 《알프스 산정의 차집》《엄지 손가락 여인》《집시처럼》 등이다. 유럽의 자연과 인간들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수놓아 준 글들이다.

...신선한 바닷바람 같은 자유의 냄새로 사람을 매혹하고 마는 곳━학생시절을 슈바빙에서 보내고 일생 동안 그 추억을 잊지 못한 토마스 울프가 「뮌헨을 말하려거든 뮌헨은 독일의 하늘이다 라는 말을 빼놓지 말아라」라고 말한 것도 이런 뜻일 것이다.

「뮌헨의 몽마르뜨르」에서

그녀에게는 뮌헨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이 물질 문명 때문이 아니라 예술과 정신적인 독립성 때문에, 그리고 동경심과 이국적인 정취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가로등 하나 하나에서 부터 얀개, 더위, 거리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그 먼 이방지대를 시화(詩化) 시키고 미화해 주었다.

두번째 그녀의 수필이 지닌 특징은 자의식(自意識) 의 풍만으로 무슨 사건에 대해서나 결론을 쉽사리 끄집어내지 않고 그녀가 지닌 온갖 천재성을 다 동원해서 추리와 연역과 귀납적 사고를 되풀이 한다는 점이다.

세째로는 여성다움, 여성의 속성, 여성의 한계 등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저항하려는 깊은 내면의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탈(脫) 아내, 탈모(脫母), 탈 여인 등으로 집약될 수 있는 이 몸부림은 요즘 흔히 말하고 있는 여권(女權) 신장이나 남녀평등, 여성 상위 운운하는 것과는 물론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현세적인 이유 때문에 여성의 숙명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선택된 천재」로서 많은 재능이 여성적 숙명으로 퇴화해 가는 것을 아까워 한 것이다.

그녀는 짧은 일생을 공식과 도식화된 삶, 인습적인 윤리와 미의식 등에 도전하여 외로이 싸우다 승부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여인이었다.

네째의 특생으로는 관념적인 사고의 흐름을 지적할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소재 삼아 글의 서두를 꺼내었다 할지라도 그녀는 곧 이를 서구적인 문학론이나 철인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 추상적인고 관념적인 문제로 다루게 되어 버린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일반 독자들이 전연 예기치 못했던 그녀의 내실을 우리는 수필 속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술과 사랑과 여행을 이야기해도 끝이 없으련만 그녀는 수필이라는 자기 고백을 통하여 상당량의 사생활을 공개해 주고 있다.

그것은 유학생활의 이면에서부터 남편과 딸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하잘것 없는 자신의 소지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을 노출시켜 주고 있다. 그녀의 글 전편에 흐르고 있는 이상과 같은 몇가지 특징을 요약하면 서구에의 향수(鄕愁)와 비범성(非凡性)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964년 여름. 만리포》《홀로 걸어온 길》외 몇편을 제외하고 나면 거의 모든 글이 서구의 자연과 경험을 쓴 글들이라는 점만 보아도 그녀가 서구적 향수에 얼마나 강한 집착심을 가졌던가를 알 수 있다. 더구나 만리포에서 까지도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폭풍의 언덕》을 연상하면서 히스크리프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고 할만큼 이국 정서에 도취해 있었다.

《홀로 걸어온 길》에서는 압록강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글인데 역시 이국 정서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녀 자신이 말하기를 「내 속에는 집시의 피가 몇 방울 흐르는 것 같다」<먼곳에서의 그림움>고 한 것처럼 숙명적인 방랑혼이 그녀의 천재성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비범성의 문제 역시 그녀의 영혼을 괴롭힌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선민(選民) 의식과 자신의 천재성을 항상 인식함녀서 산다는 것은 마치 법의(法衣) 를 입고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일 것이다. 더우기 개방사회가 미처 되지도 않았던 연대에 살았던 그녀인지라 자아의 욕망과 여성의 숙명이 빚어낸 갈등은 더 한층 치열했을 것이다.

그녀의 일기를 보면 영혼의 고뇌보다 평범한 모성애에 얼마나 많은 미련과 매력을 가졌던가를 일기는 보여준다. 비범 속의 평범이라고나 할 이런 부분은 따지고 보면 역시 그녀의 비범을 반증해 준 결과 밖에 안 된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녀가 평범한 여자로 살았다면 아예 일기에다 그런 사소한 문제를 크게 고민스럽게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젊은 세대의 우상

한때 전혜린은 젊은 세대의 우상이었다. 그녀는 자살이라는 마력과 요절이라는 숙명으로 더욱 젊은 세대들에게 절실성을 부여해 주었다. 시대적인 배경을 보면 그녀가 감수성이 민감할 때는 분명히 외래사조로 들뜬 때였다. 모든 문화의 가치 적도에는 서구의 눈금이 새겨져 있었고 한국적인 것, 향토색, 전통, 민족성은 공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서구적 향수에 도취한 비범한 글을 썼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많은 재미 있는 그녀의 글들 중에서《남자》라는 곳에서 제시한 이상적인 남성상은 예리한 그녀의 투시안을 느끼게 해 준다.

①초속 ②재산 ③사회적 자유 ④광적인 로만티시즘이 한국 남성에게 많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 그녀의 지적은 오늘까지도 남성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안전판이 되고 있다.

뛰어난 여류들, 특히 여류 예술인 중에는 속칭 「신들린」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이란 무당이나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녀들의 천재성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들린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화가 천경자 여사가 그렇고 전혜린이 그렇다.

물론 둘은 서로 다른 문체와 예술관과 인생관. 생활관을 가지고 있으나 신이 들렸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혜린이 오늘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어떻게 그녀의 미학관을 변모시켰을까 하는 점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재능과 욕망을 유감없이 발휘한 후에 느끼는 허탈감으로 자살했고, 마야코프스키는 역사적으로 자신의 임무가 끝나자 자살했다.

예술인의 자살이란 대개 이와같은 두가지 유형이 있는데 전혜린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녀는 한 시대의 젊음을 환희와 고뇌로 아름답게 수놓다가 미완성품을 그대로 남겨둔 채 조용히 떠나버린 여행자라고 할수 있다.

3. 주요 작품


- 「어떤 미소」(F. 사강) , 1956.

- 「한 소녀의 걸어간 길」(E. 시나벨) , 1958.

- 「압록강은 흐른다」(이미륵) , 1959.

- 「파비안」(E. 케스트너) , 1960.

- 「생의 한가운데」(L. 린저) , 1961.

- 「에밀리에」(H.게스턴) , 1963.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H.뵐) , 1964.

- 「태양병」(H. 노바크) 1965.

- 유작집「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66.

- 비장일기「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1968.


내용출처 : [기타] 수필집 : 목마른 계절, 범우사, 1978.(임헌영의 전혜린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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