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지로그란?>

(7) 사이버 항해의 키워드 "좌우지간"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7. 사이버 항해의 키워드 '좌우지간'


육신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은 아무래도 감성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 보다. 사이버의 비물질 공간을 두고도 사람들은 그것을 바다나 푸른 초원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정보 검색을 하는 것을 서핑(파도타기)한다고 하고 원하는 웹페이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을 내비게이션(항해)이라고 한다. 이미 말한 대로 사이버(cyber)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의 키잡이(kybernetes.操舵手)에서 나온 말이다.

아무 말에나 그 상투 끝에 올라앉아 우리를 겁주고 주눅들게 하던 사이버라는 접두어도 이렇게 키잡이라고 생각하면 바닷바람의 감성으로 가까워진다.

배를 그대로 놔두면 똑바로 가지 않고 좌우 어느 쪽으로 진로를 이탈한다. 조타수는 오른쪽으로 벗어난다 싶으면 배의 키를 왼쪽으로 움직여 원래의 가운데 위치로 돌아오게 한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이번에는 배가 왼편 쪽으로 이탈해 간다. 키잡이는 다시 키를 오른쪽으로 돌려 원위치로 돌아오게 한다.

이렇게 좌우 양극을 향해 끝없이 요동치는 배를 감지해 수시로 그 방향을 똑바로 제어하고 그 움직임을 매끄럽게 하는 조타수의 예를 모델로 한 것이 다름 아닌 사이버란 말을 낳은 '사이버네틱스'의 이론이다.

위너의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배가 요동치는 것을 옥시레이션이라고 하고, 배의 이탈을 수시로 평가해 키의 방향을 바꿔가는 것을 '피드백'이라고 한다. 그래서 배가 항상 똑바른 가운데의 방향을 유지하는 것을 평형성(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이 이상 사이버네틱스 이야기를 하다가는 욕이 나올 것 같다. 겨우 좀 사이버라는 말이 편해진다 싶었는데 그보다 더 생소한 사이버네틱스란 말이 튀어나오게 되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렇다면 서양 과학자들이 만든 말을 쓸 것 없이 옛날부터 우리가 남과 따지거나 다툴 때 곧잘 써오던 육두문자로 하자.

서로 의견이 좌우로 갈려 양극화로 치닫고 감정이 격화돼 '요동'을 칠 때 우리는 '좌우지간(左右之間)'에라고 뜸을 들이고 침을 가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조타수들이 보여줬던 좌우지간이요, 사이버네틱스에서 말하는 '피드백'과 '평형' 이론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물론이고 크거나 작거나 생명이건 무생물이건, 자연물이든 기계든 이 세상 모든 것엔 조타수처럼 키를 움직여 평형을 유지하려는 '좌우지간'의 공통언어가 있다. 그것을 과학적인 수리로 밝혀보려고 한 것이 위너와 같은 사이버네티스트의 꿈이었다.

사이버 공간을 초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를 동작시키는 것을 장화를 신는다는 뜻으로 부팅이라고 하고 인터넷 세대들을 뉴 노마드(신 유목민)라고 부르는 것도 사이버 공간을 몽골의 초원쯤으로 생각하고 하는 소리다. 그래서 단지 뱃사공의 키를 양치기의 지팡이로 바꾸고 그 배를 초원의 양떼로 생각하면 좌우지간의 소리는 똑같다. 무리로부터 좌우로 이탈해 요동치는 양떼를 한가운데로 모아 똑바로 몰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또 바다도 초원도 아닌 사이버 도시라면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자전거를 타보면 된다. 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두발자전거로 바꿔타려고 할 때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는 앞바퀴의 핸들을 '좌우지간'으로 평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무릎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조타수처럼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고 양치기의 노마드처럼 정보의 초원을 횡단한다. 혹은 자전거를 타듯이 최초로 하늘을 난 라이트 형제처럼 정보의 아스팔트, 정보의 하늘을 비행하는 거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2006.01.06 19:5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