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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랑

[스크랩] 너나 외출하세요

 

 

 

 

 

소설 "외출"을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늘 소설을 먼저 보는 버릇 때문에

이번에도 서점에서 간단히 전채요리를 먹는 기분으로

맛있게 냠냠 먹어치웠다.

 

 

외출은 이미 모든 줄거리를 꿰뚫고 있는데다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소설로 다시 만들어낸

것이라서 줄거리에 대한 흥미는 없이 그저 가볍게 읽어 내려갔다.

 

그저 가볍게..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듯이.

아니 그저 햇살 좋은 날 가벼운 옷차림에 가벼운 모자 하나를 푹 눌러쓰고

가볍게 외출을 하듯이 소설은 그렇게 나를 가볍게 실어 날랐다.

 

주인공 인수의 얼굴이 궁금하지도 않고 주인공 서영의 얼굴도 이미 알고 있는터라

나는 그들의 외출이 가져다 줄 그 "적절한 무거움"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외출은 적당히 달콤하고 적당히 아팠다.

외출에서의 남자와 여자는 적당히 울었으며 적당히 가당찮았다.

 

남자는 소주를 밤마다 마시고 아침이면 거리를 뛰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터뜨렸으며

여자는 길을 걷고 또 걷다가 지치면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억장을 다스리다가

결국엔 그들의 외출을 정당화 시켜간다.

 

여자가 마음 먹고 외출을 했다가 똑바로 바라본 세상의 빛깔은 그다지 곱지는 않았다.

 

 

서울의 잿빛 대기에서는 붉은 빛을 느꼈으며

부산의 잿빛 대기에서는 푸르른 청색을 보았으며

전라도 김제의 잿빛 대기에서는 붉은 황토빛을

발견한 것이 다였다.

 

 

외출에서의 여자는 시퍼렇게 날선 삶의 고통을 갈기 갈기 찢어놓고 노려보기보다는

그저 가만히 안아주는 여자였다.

 

이마와 콧날이 서늘한 남자가 다가왔을 때 그녀는 이미 마음이 흔들린다.

남자의 서늘한 콧날 만큼이나 서늘하고 달콤한 얼음같은 입술과 혀를 가진 남자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던 여자는 외출이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처음에만 부자연스럽던 외출이 자연스러움에서 쾌감으로 바뀌고 그들은 서로의 영혼이

이미 외출을 넘어서서 또 다른 자아 속으로 한 걸음 내디딘 것을 사무치게 깨닫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고통스럽고 어지럽던 외출이 따사로운 봄날의 외출로 끝난 것이다.

 

 

 

비록 남자는 전처와 이혼하고 여자는 전남편의 죽음으로 홀로서기를 했지만

그렇게 소설은 미지근한 해피엔드로 끝난다.

 

 

 

 

 

 

내일 만남을 대비해 몸과 맘을 준비중임.많이 보고 싶어.

 

이 문자 메시지는 인수의 전처와 서영의 전남편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주고 받은 문자들이다.

 

 

 

인수의 전처는 과자 냄새를 풍기며

고양이 같은 날램으로 남자의 품을 파고 들던 귀여운 여자이고

서영의 전남편은 섹스의 기교를 모르는 평소에 그저 담백한 기교를 가진 남자였다.

 

그런 두사람이 만나서 비디오를 찍을 정도로 서로에게 몰두하다가 사고를 당했고

그런 두 남녀는 사실상 죽음으로 서로에게 안녕을 고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래서 서해 쪽의 잿빛 대기에 어울리는 검푸른 진흙빛이다.

끈적하고 짙은 그늘을 가진 개펄처럼 그들은 그 사랑의 늪에 빠져서 서로를 건져올리지

못했다.이 두사람의 외출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외출이었다.

 

 

누군가 이 외출을 보고서 "너나 외출하세요!"한다면.....

누군들 외출 할 수 있을까.....

 

 

-蘭이-


 
출처 : 벌거벗은 만화 |글쓴이 : 김애란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