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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

수은

수은

 

미나마타의 고양이들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은 1953년부터 3년 넘게 계속됐다. 뇌가 파괴돼 미친 고양이들이었다. 주민들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황당해했다. 그러나 곧 자신들도 고양이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은 중독. 57년까지 확인된 환자만 61명, 그중 20명이 발병 반년 만에 숨졌다.

 

질소비료 회사가 강과 바다로 마구 뿌려댄 수은 탓이었다.

신경마비, 뇌기능 손상, 시력 상실, 전신마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고향도 숨겼다. 고향이 알려지면 취직은 물론 결혼도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일본 규슈의 시(市) 이름이었던 '미나마타'는 수은 중독의 상징으로 더 유명해졌다. 참사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일본 정부가 미나마타병을 공식 인정한 것은 68년, 첫 발병 후 12년이 지나서였다.

14세 소년 문송면이 서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한 것은 87년 12월 5일. 주경야독의 꿈을 품고 수은 온도계 공장에서 일한 지 한 달 만에 두통과 오한이 찾아왔다. 두 달 만에 휴직하고 서산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했지만, 원인을 몰라 보름 만에 퇴원했다. 다시 몇 차례의 발작. 입원과 퇴원. 보다 못한 형이 의사를 붙들고 통사정해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수은 중독 추정'. 그러나 회사는 "책임 없다"는 말만, 노동부는 "회사의 확인을 받아오라"는 말만 되뇌었다. 회사와 정부가 책임을 미루는 석 달 동안 송면이의 병세는 급격히 나빠졌다. 우여곡절 끝에 6월 20일 노동부의 요양 승인이 떨어졌지만 너무 늦었다. 이틀 뒤 송면이는 세상을 떠났다.

이런 수은을 동양에선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꼽았다. 중국 신선술의 원조 격인 갈홍은 '포박자(抱朴子)'에서 주사(朱砂)를 신선이 되는 상약(上藥) 중 으뜸으로 쳤다.

주사의 주성분은 수은이다. 진의 시황제가 수은을 먹고 바르며 영생을 꿈꾼 것은 유명하다.

이틀 전 환경부가 처음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피 속엔 ℓ당 평균 4.34㎍의 수은이 들어있다고 한다. 미국.독일보다 5배 이상, 중국보다도 많다. 아직 정확한 기준이 없어 이게 얼마나 나쁜 정도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지금부터 연구해 허용치도 정하고, 종합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뒤늦게라도 잘했다고 해야 할지, 여태 뭘 했느냐고 해야 할지….

 

분명한 건 미나마타의 고양이들도 죽을 때까지 끝내 이유를 몰랐을 것이란 사실이다

 

2006.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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